안녕. 내가 아까 잘 거라고 했지만, 누나 생각에 뜬 눈으로 잠을 설쳤어. 우리 내일이면 만난지 5년이 되는 날이야. 대단하지 않아? 작년 오늘은 내가 군대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라 다행이야.
근데 나 요즘 많이 외로워.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자친구가 있는데 외로울 수 있다는 거,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요즘은 정말 잘 알겠더라. 정말 누나만 바라보고 견뎌왔던 나라서 그런 걸까? 요즘 참 힘든 것 같아.
내가 전역하기 몇 달 전부터, 아니 군대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누나랑 하고 싶은 일들을 메모장에 빼곡하게 적으면서 전역날까지 버텨왔어. 하루에 하나씩, 유난히 힘든 날에는 두어 개를 더 꾹꾹 눌러 적어가면서.
군대는 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답답하고, 외롭고, 괴로웠지만,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어. 항상 '많이 힘들지?'라고 먼저 물어보는 누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으니까. 주중에는 공부하고 알바까지 하느라 바쁘고, 주말에는 늦잠을 자는 걸 좋아하는 누나인데, 내 걱정까지 얹어서 마음에 여유를 없애기는 싫었어.
사귀기 전에는 집에서 나가는 날이 드물정도였던 내가, 휴가 때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누나를 보러갔어. 분명 아침에 나갔는데 집에 들어가면 자정이 넘어있는 시계를 보면서도 시간이 참 짧다고 느껴지더라. 나는 정말 누나를 좋아했어. 일말상초다, 제대하면 헤어질 거다... 쓸데없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사랑했잖아. 그치?
그래서인지 더 기대가 됐어. 전역을 하면 뭘 먼저 할까. 누나랑 손을 잡고 학교를 다시 다니고, 같이 여행도 가고, 메모장에 썼던 것들을 하나씩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전역하던 날, 꽃신을 신겨주면서 앞으로도 꽃길만 걷자고 했던 거 기억나? 그날 누나랑 같이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내 방에 걸려있어. 제대하고 한동안은 정말 꿈만 같았는데...
근데 그 이후 우리가 만나는 날이 줄었어. 어쩌면 휴가 때보다 더 말이야. 방학 내내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던 누나는 먼저 연락한 적이 없었잖아. 낮에는 여행 일정 때문에 바빠서, 밤에는 피곤하다면서 내 연락을 끊어버렸지. 그래, 얼마만에 자유롭게 하는 여행인데, 그럴 수 있지. 하고 나는 이해했어. 내 휴가에 맞춰 일정을 조절하느라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못했을 테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누나랑 학교를 다닐 수 있으니까 설렜었어.
근데, 복학했더니 나랑 교양 수업 하나도 같이 안 들어주더라? 그래, 관심사가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 생각했어. 수강신청에 실패했다는 말에는 정말 아쉽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공강시간이 생기면 보러갈 수 있었고, 주말에 만날 수 있으니까 괜찮다면서 나를 달랬어.
그런데,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봉사 동아리와, 수많은 대외활동에 참여하고, 나랑은 학식 한번 먹기 힘들 정도로 선후배들, 동아리 사람들과 끊임없이 밥 약속에 술 약속까지 잡더라? 정말 너무 슬펐는데, 그래도 꾹 참았어. 내가 괜히 누나를 숨막히게 만들까봐. 2년동안 나를 기다려 주면서 못했던 걸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있지, 우리 내일 5주년이잖아. 내일은 같이 시간 보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내일 하루만 동아리 사람들이랑 술 먹는 거 안 가면 되는 거잖아. 내가 그 동아리가 아니라서 그 술자리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거야? 기억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이해할 수 있어.
근데, 자정이 지나서 5주년 축하해라는 내 카톡에 답장도 없더라? 그 술자리에 같이 있는 친구한테 물어봤어. 누나 지금 뭐하고 있냐고. 애초에 참석한 적도 없다더라. 나 만나야 한다면서 오지도 않았다더라... SNS 활동중을 띄우고 있는 누나를 보면서,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잔다고 해버렸어. 근데 아직도 누나는 읽지 않았네...
있잖아, 흔히들 보상심리라고 하지?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나 기다려 주느라 못 했던 일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지금이라도 할 수 있지... 근데 거짓말까지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나한테 좋은 일은 아니겠지?
매일 만날수는 없더라도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이라도 보여주면 충분했는데,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랬나보다. 지나가다 갑자기 꽃 한송이 사다주면, 웃는 누나의 모습, 가끔씩 따뜻한 손편지 한장 쥐어주는 누나의 모습이 그리웠어. 근데, 어떤 선물이나 편지보다 그리운 건 누나와의 시간이야. 하지만 누나의 시간은 이제 나에겐 많이 주어지지 않는 것 같네.
부질없지만, 차라리 내가 군대에서 힘들다고 말했으면, 그래서 누나 마음 속을 내 걱정으로 가득 채웠더라면,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늦었지만 슬슬 인정해야 해야겠네.
누나의 마음 속에는 이제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아.
누나를 많이 좋아하지만, 그리고 아직 사랑하는 것 같지만, 우리 이제 그만하자. 그동안 나 많이 사랑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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