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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자의 작문공부/이별 이야기

짝사랑 끝, 고등학교 첫사랑 편지 썰

by 혼자노는아싸(호나) 202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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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자그맣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마음 속 한 구석의 작은 부분을 파고들어 와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처음보는 선배한테 숙제를 부탁하던 모습이 귀여워 보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너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갑작스럽게 오지랖을 부려 도와주겠다고 해버렸다.

원래 친절한 천성이었지만 내 시간까지 써가면서 도와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어느순간 눈에 보이면 가장 신경 쓰이는 아이였기에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듯한 모든 행동이 무방비하게 보였고, 그랬기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너의 근처에는 나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걱정된다는 마음을 핑계삼아 집에 데려다주는 내가 가장 흑심을 품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학원을 마치면 동네를 돌다가 집 앞으로 데려다주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썸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할 때에도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언젠간 이 아이도 남친이 생기겠구나 하면서 데려다주기만 했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고백하는 상황을 수십 번도 더 그려봤지만 너는 나에게 관심이 없어보였다. 내 행동이 호의에서 나온 줄은 알았지만 그 호의를 왜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눈망울을 끔뻑거리면서 재잘거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러던 날들이 이어지다 학원을 다니지 않게 되면서 마주칠 일이 줄어들었다.

다른 연애를 하면서 여러 경험을 해보고, 마주칠 일이 줄어든 네가 점차 잊혀져 갈 무렵에 나는 다시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너는 여러모로 달라져있었다. 순진하던 그 아이는 내가 어디선가 보고, 머리로 생각했던 양아치의 모습과 흡사해보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선생님이 인사를 시켜주던 그 때, 나를 기억해내면서 인사를 하던 너는 내가 봐왔던 너였으니까.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던 전화번호를 처음으로 땄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사적인 연락을 한 번도 안 해놓고, 용케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했구나 싶었다. 수학여행을 준비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좋아하지 않던 장난을 쳐보기도 했다. 관심을 끌려고 했다기 보다는 그냥 너의 반응이 다 좋았다.

그렇게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뭐라도 사오겠다고 했다. 기념품으로 젤리를 사달라는 말에 캐리어를 가득 채울 분량을 구매했다. 집에 돌아가면서 무슨 맛을 많이 줘야 좋아할지 고민했다. 다음 날 봉투에 젤리를 담으면서도 어느정도를 담아야 할지 고민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시간, 학교를 직접 찾아갔다. 아이들이 쳐다보는 시선을 무시하고 너의 교실을 들여다보았다.

잘 보이지 않아 찾지는 못했지만, 돌아다니면서 마주치겠거니 생각하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결국 다시 교실로 가던 중에 너를 만났고, 나는 긴 말 없이 봉투를 건네주고 집에 돌아왔다. 마치면 무슨 말이라도 해주겠거니 하면서 한숨 자고 일어났다. 네가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이 젤리를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봤다면서 재잘거리는 게 좋았다. 주변에서 봐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정도로 행동했으니, 이제는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았을까 기대했다.

가끔 물어보는 좋아하냐는 말에도 항상 두루뭉술하게 대답하거나 장난스러운 느낌이 나도록,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감으로는 나를 좋아하겠지 하면서도, 고백은 나중으로 미루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걱정이라는 마음을 핑계삼아 같이 붙어다니면서 여러 번 물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아니라는 말이 돌아왔을 때의 대처를 먼저 떠올리는 나였기에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네가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운동을 했다. 처음으로 손을 잡아봤다. 왜 잡았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두근거린 감정은 아직도 기억한다. 너는 언제나 무방비했고, 나를 설레게 하는 행동도 자각이 없는 듯했다. 당연히 나와의 접촉도 아무런 생각이 없겠구나 싶어서 손을 놓지 않았다. 계절이 지나 겨울이 되기까지 고백이라는 말도, 그럴만한 분위기도 잡지 못했다.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어 같은 학교에 배정 받으면 정말 해야지.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했지만 너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너는 다른 남자를 만났고, 이게 내 운명이구나 하면서 받아들이려 했다. 쉽지는 않았다. 속이 싸늘하게 식는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껴봤다. 그래도 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허무하게 짝사랑이 끝나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 표현이 모자라서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겠구나.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은 알아주지 않았다.

같은 학원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누던 대화는 침묵이 되었고, 매일 주고받던 카톡도 지워버렸다. 학원을 마치면서 남친과 집에 같이 가는 모습을 보기 싫어 집까지 뛰어갔다. 지독히도 길던 오르막을 뛰어올라갔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설움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오르막을 달려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설움이 터져나와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울지는 않았다.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잊기로 했다. 해가 바뀌고 네가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받은 후, 서로가 불편하지 않아졌을 때 말을 걸어왔다. 네가 헤어진 뒤였다. 나는 다른 사랑을 하고 있었지만, 대화를 피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헤어졌다. 우리는 예전처럼 지내면서 며칠이 지났다. 전처럼 너를 집으로 데려다주던 날 밤,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공원을 나오면서 고백을 했다. 장난스럽게 받아준 너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길었던 짝사랑이 이제는 이루어졌으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같은 학교에서 볼 수 있어서, 언제라도 보러갈 수 있는 이유가 있어서, 설레는 감정이 익숙해져도 좋을 사람이 여친이라서. 그리고 네 마음도 나와 같다고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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