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화를 보러가는 곰신 이야기
남자친구가 죽었다. 며칠 전에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영정사진을 보고 절까지 했지만, 그냥 남의 장례식 같았다. 얼마 전에 싸우고서 연락도 잘 안 하고, 얼굴도 안 본 적이 있는데, 화해했던 건 꿈이고 지금도 싸우는 중이 아닐까? 등굣길이 너무 조용하고, 발걸음이 너무 무겁고, 휴대폰이 울리지 않아서 숨통이 조여온다. 고통은 모르겠다. 친구들은 나한테 괜찮냐며 물어보는데, 그냥 남자친구가 훈련소를 간 날처럼 지내고 있다. 2살 연상인 남자친구는 입대를 한 뒤에도 편입을 준비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같은 대학에서, 같은 학년으로 만나자며 웃고 떠들던 게 몇달 전인데, 그 때 걷던 하굣길에는 이제 너가 없다는 게 달랐다. 함께 걸을 수 없는 이 길을, 앞으로 몇 달이나 더 걸어야 한다는..
2022. 1. 21.
CC로 시작해 이별로 끝난 썰
CC로 시작했던 연애의 끝. 3년이라는 시간을 알콩달콩 만났고, 진지하게 결혼을 입에 담을만큼 행복했었다. 천생연분, 운명, 끝사랑 정말 많은 말들이 우리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정도로 우리 둘은 잘 맞았고, 내가 졸업하고, 네가 4학년이 될 때까지, 연애기간 동안 싸움이라고 부를 것조차 없었다. 서로의 인생에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바래서, 졸업 이후 예정된 유학까지 포기했고, 직장을 구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이는 잔고를 보며 꿈꾸던 미래가 있었음을 너는 알고 있었을까? 아마 평생 모를 것 같다. 너에게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저, 자연스럽게 실현될 거라 믿었던 일이었으니까... 쉬는 날이면 너를 만나고, 네가 없는 날에는 어김없이 노래방을 갔다. 친구들과 축가느낌의 노래만 ..
2021. 11. 28.
여친에게 쓰는 이별편지
안녕. 내가 아까 잘 거라고 했지만, 누나 생각에 뜬 눈으로 잠을 설쳤어. 우리 내일이면 만난지 5년이 되는 날이야. 대단하지 않아? 작년 오늘은 내가 군대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라 다행이야. 근데 나 요즘 많이 외로워.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자친구가 있는데 외로울 수 있다는 거,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요즘은 정말 잘 알겠더라. 정말 누나만 바라보고 견뎌왔던 나라서 그런 걸까? 요즘 참 힘든 것 같아. 내가 전역하기 몇 달 전부터, 아니 군대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누나랑 하고 싶은 일들을 메모장에 빼곡하게 적으면서 전역날까지 버텨왔어. 하루에 하나씩, 유난히 힘든 날에는 두어 개를 더 꾹꾹 눌러 적어가면서. 군대는 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답답하고, 외롭고, 괴로웠지만, 힘들다는 ..
2020.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