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죽었다. 며칠 전에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영정사진을 보고 절까지 했지만, 그냥 남의 장례식 같았다. 얼마 전에 싸우고서 연락도 잘 안 하고, 얼굴도 안 본 적이 있는데, 화해했던 건 꿈이고 지금도 싸우는 중이 아닐까?
등굣길이 너무 조용하고, 발걸음이 너무 무겁고, 휴대폰이 울리지 않아서 숨통이 조여온다. 고통은 모르겠다. 친구들은 나한테 괜찮냐며 물어보는데, 그냥 남자친구가 훈련소를 간 날처럼 지내고 있다.
2살 연상인 남자친구는 입대를 한 뒤에도 편입을 준비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같은 대학에서, 같은 학년으로 만나자며 웃고 떠들던 게 몇달 전인데, 그 때 걷던 하굣길에는 이제 너가 없다는 게 달랐다. 함께 걸을 수 없는 이 길을 앞으로 몇 달이나 더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며칠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너를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서 몇 번이나 이 짓을 반복했다. 사람이 너무 우울하면 아무 생각없이 잠만 잔다는데, 유일하게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라 잠만 자는 게 아닐까. 꿈에서 너를 볼 수 있어 행복했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네가 힘들다고 한 거, 솔직히 듣기 싫었다. 얼마 없는 휴대폰 사용시간 때 전화하는 것도 일부러 공부하는 척 안 받기도 했다. 다시 네가 전화를 한다면 선임도, 간부도 같이 욕하면서 우스갯소리로 탈영이라도 하라고 할 것 같은데, 다시는 네가 나한테 전화를 못 한단다. 장례식이 끝나고도 나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해서 몇 번이나 우리의 통화 녹음을 찾아 폰을 뒤진다.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도 해보고, 같은 대답에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언제나 오늘도 사랑한다고 끝난다.
얼마 전 휴가 때 밥을 먹다가 나를 안으면서, 다시 복귀하기 싫다고 했던 네가 떠오른다. 그때 내가 한 말은 평생 잊혀지지 않겠지. 원래 군대가 그런 거래. 금방 지나갈 테니까 내 생각하면서 힘내. 왜인지 한 번이라도 물어봐 줄 걸. 아니면 손이라도 잘 잡아줄 걸. 돌아가는 길에 뽀뽀라도 한 번 더 해줄 걸. 그때 알았어 나중에 또 나올게 하면서 웃던 네 얼굴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네 관물대에는 사진과 편지가 가득했단다. 손때가 남아있을 정도로 몇 번이고 읽었던 내 편지, 휴가 때마다 하나씩 들고가던 우리가 찍힌 사진. 너는 언제가부터 전화 대신 카톡을 했고, 힘들다는 말도 안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괜찮아진 줄만 알았던 멍청한 나는, 네가 전투화끈으로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숨이 멎어갈 때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냥 다 포기하고 도와달라고 할 힘도 없었다는 걸, 네가 죽고나서 깨달았다.
이렇게 너를 허망하게 잃을 줄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막았을 것 같다. 너를 괴롭히는 선임들, 무시하는 후임들, 방치하는 간부들. 너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주변에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라도 너를 살리기 위해서 발버둥쳤어야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너는 호들갑을 떨면서 위로해 줬는데, 네가 죽을 때까지 나는 그것조차 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네가 죽었나 보다.
너를 뺀 모든 게 이렇게 의미가 없을 줄 알았다면, 모든 걸 포기해서라도 너에게 모든 의미를 기울였을 거다. 자살이라고 했지만 화장실 천장에 끈을 매달고 그 사이로 목을 집어넣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내 사진으로 하루를 버틴다, 항상 보고 싶다던 그 말들이 이제는 내 목을 조여온다.
너희 부모님께 빌고 또 빌어서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보고, 널 보낼 수 있었다. 넌 차갑고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있었다. 아직 고등학생이던 때, 내 무릎을 베던 네 얼굴이 이랬던가. 나를 두고 세상을 떠난 너는 너무 편안해 보였는데, 그게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네 손을 다시는 못 잡는 게, 다시는 널 안지 못하는 게, 다시는 네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그냥 현실 같지가 않다.
내일은 널 보러갈 수 있을 것 같다. 목 뒤에서 넘어오는 수면제를 물로 밀어넣고, 내려오는 눈커풀과 무뎌지는 감각을 참아가면서, 남아있는 약들을 하나둘씩 삼킨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를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게 너였으면 한다. 아프지 않고, 힘들지도 않고, 고백하던 그 때처럼 웃으면서 반겨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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