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보면 그런 글들이 참 많다. 자존감이 낮아 만나는 사람마다 좋지 않게 헤어졌지만, 지금 만나는 사람은 끝까지 내 옆을 지켜줬다는 이야기. 그래서 알콩달콩 예쁘게 사랑하고 있다는 아름다운 결말. 어렸을 때부터 읽어왔던 글이라, 시작부터 결말까지 다 꿰고 있었는데, 정작 나는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1%의 이야기가 대단해 보이는 건, 그렇지 못한 99%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단지, 1%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을 바꾸는 것도,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모두 힘든 시간을 감내해야 함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별 게 아니었다. 항상 내 마음을 확인하려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 사랑해?', '얼마나?', '내가 ~해도 좋아?' 등등 다른 연인들이 늘상 하는 그런 수준의 말이었다. 그러나 한번씩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녀는 상상 이상의 서운함을 느꼈다. 거기에다 의미를 부여해서 한동안 대화가 힘든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만큼 내가 좋아서, 헤어지기 싫기 때문에 거치는 절차라고 믿었다.
다음으로는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았다. 지금와서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 마음을 의심하는 만큼, 자신의 마음을 주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아는 것과 이해는 다르다고 했던가. 스킨십의 문제가 아니라, 문자로 주고받는 간단한 애정표현이나 감정표현조차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먼저 연락을 하면, 단답이나 늦은 답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졌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
마지막으로 여유가 없었다. 다른 게 아니라, 상대방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기 때문에, 내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할 힘이 없었던 거다. 말다툼이 일어났을 때에도 항상 이해받기를 원했다.
어느부분에서 기분이 상했는지 차분히 듣고, '그래서 화가 났었구나.' 라고 하면, 거기서 대화가 끝이 났다. '남친인 니가 잘못 했고, 네가 그것을 이해를 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이런 식으로 종결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받은 상처나 기분을 말할 시간은 없었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른 말이라고 그랬던가. 맞는 말이었다. 낮은 자존감은 그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패였고, 높은 자존심은 나를 공격하는 창이었다. 모든 다툼의 원인은 남친인 나였고, 그래서 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으며,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애정표현도 하지 않는다. 이 반복되는 고리를 끊는 방법은 이별 뿐이었다.
나는 애정을 구걸하거나, 스스로 자존감을 깎아내려가면서 사랑할 정도의 위인이 아니였다. 모든 잘못은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으니, 이번 또한 그렇게 생각하리라. 그렇게 헤어지자고 통보하고 짧지만은 않았던 기간동안 저장된 사진들을 다 지웠다. SNS에 들어가면 또 다시 비슷한 글들을 보게 되겠지만, 이제는 그들이 함께 이겨내기 위해 견뎠을 시간을 알기에, 마냥 부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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