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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 이별 이야기
비전공자의 작문공부/이별 이야기

엄마, 나 죽을래

by 혼자노는아싸(호나) 2022.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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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유서를 쓰려고 찾아봤는데, 내 이야기가 있더라.

'어른들은 모든 사물을 숫자로만 판단해요'

'붉은 벽돌 창틀에 사기 꽃병이 놓인 집을 봤어요' 하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10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 하면, 이해한다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닭요리를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었어요' 하면, 관심도 없지만, '새로 사귄 친구 아버님의 월급은 1만 프랑이고, 그 아이는 8만 프랑짜리 집에 살아요' 하면 귀 기울여 듣는다고.

어린왕자에 정말 그런 내용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청 공감해.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면,
제일 먼저 묻는 게 다 그 모양이었잖아.
'공부는 잘하니?', '학원은 다니니?', '몇 개나 다니는데?'
내 친구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기준이 다 그랬잖아.

차라리 착한 애인지, 불량한 짓은 안 하는지를 물어보지.
수업 시간에 잠은 안 자는지,
취미는 뭔지 그런 걸 물어봤어야지.
학원을 몇 개씩 다니고,
영어단어 조금 더 외우는 게 궁금했어?

나, 아직 중학생이야.
고등학교 가려면 2년은 더 있어야 하는 중학생.
내가 친구랑 논다고 공부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니잖아.
'걔네랑 안 놀았으면 더 잘했을 텐데'
그런 소리 듣자고 내가 열심히 한 게 아니잖아.

전교 1등도 놀러다닌다고 하면,
'그 시간에 네가 공부해야 따라가지.'
전교 1등이 공부하면,
'1등도 공부하는데 네가 어떻게 놀 생각을 해?'

그거 알아?
그 말대로 하면 난 1등이랑 놀지도 못하는데,
친구로 지내기는 해야 해.

그리고, 내가 친구들이랑 노느라 열심히 안 했다?
아니야, 친구들이랑 놀았으니까 열심히 할 수 있던 거야.
지긋지긋한 집에서 숨통 좀 트이려면 나와야 했으니까.
그래야 다시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까.

근데, 이제는 그 숨통도 끊어놨더라.
과외를 붙여서 놀 시간을 없애고,
친구들한테는 떨어쟈달라고 전화하고,
진짜 너무하다.

사람이 숨이 막히면 죽는다잖아.
그래서 죽으려고.
그래야 편해지겠지?
끽해야 15년 산 내 인생이 정말 아까운데,
나는 남은 학교생활을 이렇게 보낼 생각이 없어.
그럴 자신도 없고.

나 잘되라고 하는 말?
거짓말 하지마.
그냥 엄마 욕심이었어.
나한테 뭘 바라고 있었든, 다 엄마 욕심이었다고.

내가 죽거든 말이라도 하지 그랬냐며 한탄할까봐 남기는데,
난 정말 여러번 말했어.
'왜 이러냐', '나 힘들다', '나 숨 좀 쉬자',
철 없는 아이의 투정으로 들었다면, 이제는 제대로 알겠지?
모든 말이 진심이었어.

난 삶에 아무런 낙이 없고,
엄마는 줄 생각도 없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끝낼래.
사후 세계는 없으면 좋겠다.
어떤 식으로든 뭘 다시 하고 싶지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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