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소설10 짧았던 가출 썰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놀기만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친구들과 놀러나가는 평범한 아이였을 뿐이다. 학기 시작이 얼마 지나지 않아 3월 모의고사를 치렀는데, 그 시험은 곧 가출의 계기가 되었다. 중학생 때는 전교권에 머물던 성적이 중위권으로 떨어진 것이다. 부모님은 나를 앉혀두고 몇 시간을 꾸중하셨는데, 순간적으로 속에서 끓는 반항심을 이기지 못하고 부모님께 대들었다. 결국 그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였고, 다음 날 가출을 실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출을 감행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부모님이 교회를 간 사이, 가지고 있던 저금통과 할머니의 지갑에서 현금 몇 장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어딘가의 찜질방이라도.. 2022. 3. 11. 철없던 시절 멀어진 절친 이야기 "야, 꺼져라" 중학교 3학년, 네가 이사가기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이후로 우리는 멀어졌다. 그때의 나는 다툼이 생기면 자리를 피하는 성격이었다. 치솟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하필 싸운 상대가 3년간 붙어다니던 너였다. 절대 떨어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너였다. 화해를 하려던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는 용기가 많이 부족했다. 서로 소심해서 먼저 말을 못 걸고 눈치만 보면서 시간이 흘렀다. '아직까지 말을 걸지 않다니 내가 싫어진 게 아닐까?' 나와 성격이 비슷했던 너였으니까, 아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자기 비밀을 말해줄 정도로 친한 친구였는데, 몇 발짝 .. 2022. 3. 8. 스물세 살, 아빠의 장례식 스물세 살, 아직 대학생 과잠도 벗지 못한 시기. 우리 아빠는 나와 엄마를 두고 갑작스레 떠나버렸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도, 병원으로 달려갈 때도 거짓말 같았다. 죽지는 않았겠지, 조금 많이 다쳤을 뿐이겠지. 초조한 마음에 휴대폰만 챙겨서, 집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빠르던 KTX가 왜 이렇게 느린지, 대학은 왜 이렇게 먼 곳으로 와서 집도 빠르게 못 가는지,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 곳은 병실이 아닌 장례식장이었다. 왜 그렇게 모여들 있어? 아빠는 어디 있는데? 엄마, 왜 주저앉아 있어? 아빠의 직장 동료분들이 잔인하게 입을 열었다. "돌아가셨단다." 생각보다 별로 슬프지는 않았다. 기분은 담담했고, 직장 동료분께 아빠의 사고 이야기를 다 들었다. 공사장 추락사고. 빗물이 덜 마.. 2022. 3. 7. 연락 문제로 싸운 연인과 이별 학창시절을 함께 하던 너와 헤어졌다. 연락 문제였다. 열다섯살부터 스무 살이 되는 올해까지 5년을 사귀었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귀기 전, 좋아한다고 표현을 마구 날리던 때가 있었다. 잘해줄 테니까 사귀자는 고백을 받은 뒤로, 몇 달 동안은 기쁨에 겨운 날들이 반복되기도 했다. 하루하루 너와 연락하는 시간이 행복해서, 점점 더 너에게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연인 사이의 연락 문제가 이별 사유가 될 줄은. 골머리가 썩고, 눈물을 흘리고, 그러다가 포기하고, 결국 너를 놓아버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는 나보다 친구가 더 우선이었다. 그 다음은 자신이었고. 친구들과 PC방을 가면 휴대폰을 뒤집어놓고, 집에서 티비를 볼 때는 저 멀리 방치해두고, 카톡.. 2022. 3. 6. 군대에 있을 군화에게 말하는 이별 어느새부터 우리의 대화에서 질문이 줄어들었다. 매일 전화를 걸지만, 정적이 차지하는 시간이 늘었다. 같은 일과를 반복하는 군대이니, 지금은 네 일상이 짐작이 간다. 특별한 일이 자주 생기지도 않으니, 너도 할 말이 적어졌나보다. 가끔은 신나서 혹은 풀이 죽어서, 길게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미안하다. 겪어본 적이 없으니 공감을 해주기가 어렵다. 뭐라고 반응을 해야 네가 좋아할까. 조언을 바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힘내라고 하기에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그 말이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라 실망하고 있다면 미안하다. 한 번은 시시콜콜한 내 이야기를 늘어놔봤다. 뭔가 재미가 없다고 해야할까. 옆에서 들려주는 것과는 달랐다. 서로 보면서 대화할 때는 경청이.. 2022. 3. 5. 먼저 떠난 우리 강아지 내년이면 10살, 어느덧 인생의 반을 함께 했구나. 처음 집에 데려왔던 쪼꼬미 시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네발로 기는 것조차 낑낑 소리를 내던 게 엊그제인데,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든 노견이 되었을까. 뛰어놀기 좋아하던 활기찬 너였는데, 어느순간부터 잠을 자는 시간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색이 바래지는 털을 보면서 늙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렇게 실감을 하고 있으면서도, 갑작스럽게 이빨이 빠졌던 날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너를 안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 조금 더 쓸 수 있었던 이빨을 버리게 된 게 아닐까. 의사 선생님은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셨지만, 나에게는 건강을 잃어가는 네가 낯설었다. 노화는 점점 더.. 2022. 3. 1.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