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화를 보러가는 곰신 이야기
남자친구가 죽었다. 며칠 전에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영정사진을 보고 절까지 했지만, 그냥 남의 장례식 같았다. 얼마 전에 싸우고서 연락도 잘 안 하고, 얼굴도 안 본 적이 있는데, 화해했던 건 꿈이고 지금도 싸우는 중이 아닐까? 등굣길이 너무 조용하고, 발걸음이 너무 무겁고, 휴대폰이 울리지 않아서 숨통이 조여온다. 고통은 모르겠다. 친구들은 나한테 괜찮냐며 물어보는데, 그냥 남자친구가 훈련소를 간 날처럼 지내고 있다. 2살 연상인 남자친구는 입대를 한 뒤에도 편입을 준비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같은 대학에서, 같은 학년으로 만나자며 웃고 떠들던 게 몇달 전인데, 그 때 걷던 하굣길에는 이제 너가 없다는 게 달랐다. 함께 걸을 수 없는 이 길을, 앞으로 몇 달이나 더 걸어야 한다는..
2022. 1. 21.
여친에게 쓰는 이별편지
안녕. 내가 아까 잘 거라고 했지만, 누나 생각에 뜬 눈으로 잠을 설쳤어. 우리 내일이면 만난지 5년이 되는 날이야. 대단하지 않아? 작년 오늘은 내가 군대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라 다행이야. 근데 나 요즘 많이 외로워.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자친구가 있는데 외로울 수 있다는 거,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요즘은 정말 잘 알겠더라. 정말 누나만 바라보고 견뎌왔던 나라서 그런 걸까? 요즘 참 힘든 것 같아. 내가 전역하기 몇 달 전부터, 아니 군대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누나랑 하고 싶은 일들을 메모장에 빼곡하게 적으면서 전역날까지 버텨왔어. 하루에 하나씩, 유난히 힘든 날에는 두어 개를 더 꾹꾹 눌러 적어가면서. 군대는 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답답하고, 외롭고, 괴로웠지만, 힘들다는 ..
2020.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