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의 작문공부/이별 이야기

16살의 중학생의 자살 이유

혼자노는아싸(호나) 2022. 3. 27.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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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너무 슬프면, 미소를 지으면서 가면을 쓰게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싶던 적이 없었고, 알게 될 줄도 몰랐어.

  인생이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데, 보통 비극에도 좋은 일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잖아. 근데 살아보니까 나쁜 일만 반복되더라도 비극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 갑자기 이런 글을 보게 되어서 당황스러울려나?
  근데, 나 정말 살기 싫었어.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이 기분을 이해할지 모르겠네. 구구절절 늘어놔도 공감은 못 할 거야. 엄마든, 아빠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거잖아. 그렇지?

  제일 싫었던 건 가난이었어. 학교에 가면 교실 벽에 명언들이 몇 개 붙어있거든? 사람은 꿈을 크게 가질수록 좋대. 이룰 수 있냐없냐의 문제를 떠나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그만한 능력이 생긴다고 그러더라.
  내 꿈이 뭐였는지 알아? 상담사였어. 나처럼 힘든 애들 더 아파하지 않게 달래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근데, 엄마아빠한테 말해주니까 가장 먼저 뱉은 말이 뭐였어?
  
  '그거 돈 얼마나 번다고.'
  '공부도 오래 해야한다는데, 다른 게 좋지 않을까?'

  나 16살이잖아. 그냥 꿈이고, 생각은 할 수 있는 거잖아. 목표가 열심히 배우다가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왜 의욕을 다 꺼뜨리는 거야. 그 꿈을 접으면 지금 당장 내가 어디에 취직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잖아. 고개만 끄덕이거나, '그렇구나' 한마디만 했어도 고마웠을 거야. 우리집 형편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다른 친구들처럼 떼쓴 적도 없고, 원하는 게 많지도 않았고, 시키는 것도 다 잘 들으면서 살았는데, 가난하니까 꿈도 작게 가져야 한다는 게, 난 너무 속상했어. 나름대로 소소하게 잡은 꿈이었는데, 그것조차 가만히 두지를 않네... 그래서 나는 가난이 싫었어. 당장 돈버는 거에만 급급해서, 미래를 생각하는 것조차 돈 걱정부터 하게 됐으니까.

  그다음은 아빠의 술주정이야. 이것도 어찌보면 가난이 만든 결과니까 같은 말로 들릴 수도 있겠네. 매일 술에 취해서 들어와서, 가족이 자고 있든, 내가 공부를 하고 있든, 나와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거 기억은 해? 사람이 힘들면 술을 마실 수도 있다고 그랬지? 근데, 돈이 없어서 딸이 갖는 꿈도 제대로 응원 못해주는 사람이, 술은 왜 매일 마실 수 있던 걸까. 누가 사주는 것도 아니고, 직접 사서 마시는 거잖아.
   집으로 날아오는 카드값 통지서를 보면, 술값만 우리 가족 식비랑 맞먹더라. 식탁에 드물게 올라오는 고기, 아빠가 술만 좀 줄이면 매주 먹을 수 있고, 친구집에 가서야 알게된 배달, 그놈의 술만 아니면 진작에 먹어봤을 텐데... 밖에서 고생하는 거 누가 모르겠어.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잘 알지. 근데, 아빠만 희생하는 것도 아니었잖아. 엄마도 틈틈히 일을 하고, 나는 그 사이에서 다른 생각 없이 공부만 했잖아. 술 안 마시고 집에 와서 우리랑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아니면 바로 잠드는 게 그렇게 어려울 일이었어?
   겨우 소리치는 걸로 술주정이라고 생각할까봐 덧붙이는데, 아빠는 늘 소리치다가 입에 담기도 힘든 욕을 입에 올리면서 직장 사람들을 욕했어. 우리한테 한 건 아니지만, 동네가 떠나가라 질러대니까 얼마나 듣기 싫었을지 짐작이 가? 야밤에 누가 듣기라도 할까봐 맨발로 달려나와서 집으로 끌고 들어왔던 엄마랑 내 심정을 알아? 아빠는 일어나면 기억도 없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일을 나갔겠지.
  하지만 이제는 다 용서할 거야. 더 이상 들을 일도 없을 테니까.
  
  천국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가게 된다면 우리 가족 내가 지켜줄게. 신이 있어서 소원 하나만 들어준다고 하면, 우리 가족 나 없이도 잘 살게 해달라고 말할 테니까. 행복하게 살다가 나중에 봐. 이제 힘이 없어서 그만 쓸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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