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노는아싸(호나) 2022. 3. 1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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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놀기만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친구들과 놀러나가는 평범한 아이였을 뿐이다.
  
  학기 시작이 얼마 지나지 않아 3월 모의고사를 치렀는데, 그 시험은 곧 가출의 계기가 되었다. 중학생 때는 전교권에 머물던 성적이 중위권으로 떨어진 것이다. 부모님은 나를 앉혀두고 몇 시간을 꾸중하셨는데, 순간적으로 속에서 끓는 반항심을 이기지 못하고 부모님께 대들었다. 결국 그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였고, 다음 날 가출을 실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출을 감행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부모님이 교회를 간 사이, 가지고 있던 저금통과 할머니의 지갑에서 현금 몇 장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어딘가의 찜질방이라도 전전하면 하루정도는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미성년자는 찜질방에서 잘 수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보호자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지만, 가출을 한 마당에, 전화로 허락을 받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결국 발걸음을 돌려 머물 곳을 찾으러 갔다.

  11시, 하염없이 거리를 걷다보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식당들은 점심 때 몰려들 사람들을 기다리며, 영업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중 눈에 띄었던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 세트를 하나 시켰다. 안에는 먼저 식사 중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이른 점심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그 틈에서 한번씩 나를 보는듯한 시선이 불편했다. 혼자 밥을 먹어서 그런걸까, 가출한 티가 나서 그런걸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스스로 찔리는 게 있어서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다급히 식사를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공원에 앉아있기도 해보고, 만화카페에서 책도 충분히 읽었을 때쯤, 저녁이 되었다. 청소년 이용시간이 밤 10시까지였기에, 나는 다시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이 어두워졌지만, 땅은 건물들의 불빛으로 밝기만 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직장인과 학생, 자영업자들을 보며 각자가 사회의 부속품으로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졸업을 하면 사회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게 되겠지,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겨우 시내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광역시를 단위로 하고, 나라나 세계를 단위로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걸까. 자신감이 없어졌다.

  가출을 다짐하고 나왔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돈을 벌기에는 능력이 없었고, 인정을 받지도 못하는데 어디를 나간다는 말인가. 결국 늦은 밤에 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부모님은 내 가출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어서 자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손자가 지갑에 손댄 사실은 아셨지만, 부모님 몰래 방에 들어오셔서는, 사람이 그럴 때도 있다며 다독여주셨다. 짧았던 나의 가출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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