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우리 강아지
내년이면 10살, 어느덧 인생의 반을 함께 했구나. 처음 집에 데려왔던 쪼꼬미 시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네발로 기는 것조차 낑낑 소리를 내던 게 엊그제인데,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든 노견이 되었을까.
뛰어놀기 좋아하던 활기찬 너였는데, 어느순간부터 잠을 자는 시간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색이 바래지는 털을 보면서 늙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렇게 실감을 하고 있으면서도, 갑작스럽게 이빨이 빠졌던 날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너를 안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 조금 더 쓸 수 있었던 이빨을 버리게 된 게 아닐까. 의사 선생님은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셨지만, 나에게는 건강을 잃어가는 네가 낯설었다.
노화는 점점 더 진행됐다. 산책을 조금이라도 오래 한 날에는 한동안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이니, 관절이 예전같지 않나보다. 잘 걷지도 못하는데 , 같이 외출을 하는 게 정말 너를 위한 일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내 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너는 같은 시간이 되면 목줄을 물고, 내게 달려와 나가자고 졸랐다. 어쩔 수 없이 짧게라도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가려 하면, 너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나를 바라본다. 한눈에 봐도 더 놀다가고 주장하는 모습, 결국 마음이 약해져서 집앞을 의미없이 서성이다가 들어가고, 너는 또 다음 날 절뚝거린다.
어렸을 때부터 옆에 있었기에, 언제나 그럴 줄로만 생각했는데,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늙어간다는 건 납득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 나를 떠나게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사서하는 걱정이였으면 좋았으련만,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는 네 모습에 눈물이 났다.
관절이 많이 안좋아지기 전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아 주었어야 했는데, 더 많이 산책을 시켜주었어야 했는데, 더 많이 함께 있었어야 했는데, 너의 건강했던 시절에 추억을 더 쌓았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들었다.
지금이라도 최대한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20살의 대학생은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너와 함께 사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행복해지고 있지만, 끝이 다가옴을 알고 있으니 네가 사라진 뒤의 공허함을 어떻게 메워야 좋을지 막막했다. 마지막 순간에 너는, 그리고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로에게 기억될까.
고민을 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날 밤,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으니까. 잠자리에 들기 전 숨을 헐떡이는 네게 달려가 끌어안고 말했다.
"사랑해, 나한테 와줘서 고마웠어."
"그동안 해 준 것도 없는데, 사랑해 줘서 정말 고마웠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할 수 없었을 거야."
"이렇게 너를 보낼 수 밖에 없는 못난 주인이지만, 너도 행복했었다고 느꼈으면 좋겠어."
마지막 말을 듣기라도 한 건지, 너는 내 얼굴을 햝아주고 잠에 들었다.
아직도 네가 떠난 자리에 남은 장난감이며, 밥그릇이며, 목줄까지. 볼 때마다 너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지만, 나는 아직 이것들을 치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 밤마다 너를 떠올리며 울지 않는 밤이 온다면, 텅빈 집안에 적응해 반겨주는 이가 없는 게 익숙해 질 때면, 그제야 나는 너의 흔적을 지워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조금 더 너의 흔적에 기대어 오늘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