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의 작문공부/이별 이야기

가장 우울하던 시기 만났던 첫사랑에게...

혼자노는아싸(호나) 2021. 2. 28. 17:24
반응형

  우리가 만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네게 고백을 해버렸다. 모든 결정을 질질끌며 우유부단하던 내가, 어떻게 고백을 할 수가 있었는지 아직도 신기하다. 그렇게 나는 너와 옷깃도 스치는 사이가 되었다.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 위로 눈송이가 흩날리던 때였다.

  우리는 가까이 있던 만큼 만나는 횟수가 많았다. 추운 날씨에도 먼저 나를 데리러 오는 너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추위에 익어버린 두 볼을 내 손에 비비면서, 행복한 듯 미소를 지어줬다. 가끔은 내가 데리러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너를 만날 준비를 마치고 나갈 때면, 언제나 먼저 기다리고 있던 너였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어서 왔다는 너와, 그 말에 미안하고 고마움을 느꼈던 나. 우리의 풋풋하던 시절은 그랬었다. 손만 잡아도 숨이 멎을 듯 심장이 뛰던 때였다.

  나는 너보다 감정 기복이 심했다. 우리의 연애를 알고 있는 모두가 너에게 고생하겠다며 장난을 칠 정도로. 너는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가끔 내 기분이 나빠진 것 같을 때면 말수가 줄어들고는 했다. 한 번에 두가지 일을 못하던 너는, 내 기분이 나빠진 이유를 궁리하느라 위로 한 마디를 건낼 정신도 없었나 보다.

  그런 네게 화가 나고, 나도 모르는 이유를 네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기분이 더 안 좋아질 때면, 너는 갑작스럽게 나를 안고서는 잠깐만 이러고 있자고 했다. 그 품이 너무 따뜻해서, 나는 네게 점점 더 녹아들어 버렸다.

  내가 항상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유일한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난 모습을 제일 많이 보여준 사람, 그게 너였다. 안경을 벗어도, 화장을 안 해도, 항상 예쁘다고 말해준 사람. 나조차도 싫어하는 감정 기복이나, 못난 모습을 보일 때도 많이 속상했냐면서 안아주던 사람. 그런 네가 좋아서 나도 네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상담도 꾸준히 받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너에게만 매달리는 나를 고쳐나갔다. 가끔, 자기랑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섭섭하다며 장난을 치던 너였지만, 언제나 내 편에서 응원하겠다고 말해줘서 나는 나아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네가 군대를 가고, 우리는 떨어지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아 견디기가 힘들었다. 같이 걷던 거리는 혼자 걷기엔 너무 넓었다. 너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흘러갔다. 우리는 왜 가까이에 살았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추억을 만들었을까. 모든 장소에 스며있는 너와의 추억을, 나홀로 마주하는 매일마다 마음이 타들어 갔다.

  우리가 못해도 반 년은 멀어지게 된 날로부터 한 달쯤 지나고, 결국 너와 나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버렸다. 나는 더 이상 힘들어서 못 할 것 같다는 짤막한 문자를 보냈다. 정말 내가 보낸 게 맞는지, 친구가 장난을 친 건 아닌지 확인하는 네게, 나는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차갑게 말해버렸다.

  어쩌면 너처럼 좋은 사람에게 상처를 줘서 벌을 받는 것 같다. 나아지던 우울증이 다시 생겨 어두침침한 감정이 나를 끌어내리지만, 나를 건져올려 안아줄 네가 없다. 그렇다고 다시 고백할 용기도, 너를 다시 마주할 자신도 없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해본다. 우연히라도 전해져서 짤막한 문자로 이별을 말하기까지의 내 감정을 알아줬으면 해서.

  너는 얼추 나를 다 지웠을까. 같이 거닐던 거리를 홀로 마주하던 나처럼, 너는 카톡을 보고 문자를 읽던 시간이 없어졌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수한 일상 사이에 끼어있던 나를 너는 이제 다 지웠을까. 네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매일 같이 네 상태메시지를 확인한다. 헤어진 뒤로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지만, 혹시나 미련이 남아있을까봐. 구차하더라도 매달려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을까봐.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며 위로해주던 친구들의 말이 아직도 와닿지 않는다.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된다면, 너를 다 비워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 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나마 위로를 받아도 눈물부터 흘리던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맞는 말이라며 거짓으로라도 웃을 수 있다.

  그래도 너를 지우지 못했기에, 네가 너인줄 모르도록 몇 자 바꾸어서 적어보았다. 이걸 적으면서 더 선명해지는 너라는 사람은 언제쯤 지울 수 있을까. 너의 상태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편히 잠드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친구로 다시 만나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갑작스럽지만 마무리 하는 말이다. 내가 너에게 못 해준것이 너무도 많은 게 이렇게 마음에 걸릴 줄 몰랐다. 너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노력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 같다. 내가 어리석고 서툴어서 행복을 놓아버렸고, 네게 상처를 줬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이유 없이 놀이터를 빙빙 돌던 밤도, 레모네이드를 먹이고 찡그린 얼굴을 보며 웃었던 날도, 네 생일을 뒤늦게 떠올려 울음을 터뜨려 버린 나를 달래주던 그 품도, 이젠 다시는 누릴 수 없는 예전이 되어버렸다. 어느 겨울 눈송이를 맞으며 피어난 사랑은, 열매를 맺었어야 할 이번 여름 다 지고 말았다.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 아는 너를 잊지 못했다. 아마 죽을때까지 기억 할 것 같다. 로맨스가 다 사라져버린 지금에서야 뱉는 싸구려 멘트는 아니고, 그냥 기억에 남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너를 밀어내던 그 날처럼 아프진 않을 거고, 너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너와 같은 교정에서 마주칠수도 있겠지만, 아마 모르는 척 지나칠거고, 그럴 때마다 가끔 눈물이 나겠지만, 우리는 서로 삶을 살겠지.

  미안했고, 주제넘지만 나보다는 좋은 사람 만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성격도 좋고 멋진 사람이니까, 네 걱정을 내가 한다는게 우습겠지만. 멋쩍게 줄일게. 안녕.



-------------------------------

우울증, 캠퍼스 커플, 대학교 CC, 이별, 헤어짐, 연애, 겨울 고백, 군대, 고무신, 곰신, 군화,  스킨십

반응형